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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고시기부터 길림지역에 인류가 번성하며 생할하였다. 5~1만년전에 나타난 유수인(榆树)’, ‘안도인()’, ‘청산두인()’은 길림 고대 인류문명이 형성된 중요한 표지이다.

  길림 경내의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상호 접촉하고 영향을 미치면서 숙신(肃慎), 예맥(), 동호() 3대 족속이 점차 형성되었다. (), () 시대에 길림성 경내의 고대민족이 중원 왕조와 함께 예속성질이 있는 조공을 바치는 관계를 맺었고 이로부터 점차 중화민족의 구성부분이 되었다.

  역사·연혁

  길림지역은 오랜 역사적 변화를 거쳐 형성되었다. 선진시기(先秦)부터 길림지역은 중앙재정권에 의해 행정구역 관할범위에 귀속되었다. 한나라()시기 군현()을 설치하고 당나라의 발해 및 그 후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각 조대에 부(), (), ()을 설치하였다. 명나라시기에는 도사(都司)와 위소()를 설치하였다. 서기 1653(청나라 순치 10)청정부가 설치한 닝구타 앙방장징(宁古塔邦章京)이 바로 길림성 설립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성급 초기형태라는 점에서 길림의 발전역사에서 이정비적인 의미가 있다. 서기 1673(청나라 강희원년)에 선창(, 오늘의 길림시)에 길림성()을 설립하고 길림우라(吉林)’(만족어로 강기슭이라는 뜻)라고 불렀으며 길림의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기 1676년 닝구타장군이 길림성()에 이주하였고 이로부터 길림은 기존의 성읍명칭에서 행정구 명칭으로 확정되었으며 서기 1907(청나라 광서 33) 정식으로 길림행성(吉林行省)으로 확정되었다.

  청나라 이전에 길림은 봉쇄상태에 있어 사회경제가 매우 더디게 발전하였는데 청나라 중,후기에 봉쇄가 완화되면서 경제가 눈에 띠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00년대 초에는 동북은 러시아,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확장의 각축을 벌리는 전쟁터로 전락되었다. ‘5.4운동의 추동과 ‘5.30운동의 영향으로 길림 본토에서는 반제국주의 애국운동이 다투어 일어났다. 민족공상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근대 규모를 갖춘 도시가 연이어 나타났다. 1931‘9.18사변후 길림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었다.

  위만주국

   1931년 일본제국주의가 ‘9.18사변을 도발하고 중국 동북을 침략하였다. 1932 3월 위만주국 괴뢰정권을 수립하였는데 부의()가 집정하고 연호를 대동(大同)’이라 하였으며 장춘을 신경(新京)’으로 고치고 위만주국 수도로 정하였다. 1934년 일본은 만주국을 만주제국으로 고치고 집정황제, 연호 대동강덕(康德)’으로 개명하였다. 1945 8 15일 일본은 무조건투항을 선포하고 8 18일 부의가 통화(通化)에서 퇴위를 선포함과 더불어 위만주국이 멸망되었다.

  영광스러운 혁명전통

  길림 인민들은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투쟁을 경과한 용감하고 영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일본 등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침략에 대항해 포악한 세력에 필사적으로 맞서 중화민족의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용감하고 기세 드높이 항일에 뛰어들었다. 항일 초기 왕덕림(王德林), 당거오(唐聚伍), 왕봉각(凤阁) 등 항일의용군의 궐기로부터 양정우(靖宇), 위증민(魏拯民), 왕덕태(王德泰)가 영도하는 동북 항일연군 1로군(一路)의 피와 생명으로 애국주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길림해방

  동북해방전쟁시기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동북민주연군(그 후 동북인민해방군으로 칭함)이 길림지역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4전사평(四平)’, ‘4보임강(四保)’, ‘삼하강남(三下江南)’ 등 전역을 발동하였고 이와 더불어 동북 전세가 바뀌게 되었다. 1948년 료심전역()이 시작되자 동북인민해방군이 장춘을 포위하고 막강한 정치적 공격과 군사압력을 가하자 국민당 장춘주둔부대가 해방군에 투항함으써 길림 전반이 해방되었다.

  행정구역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초기에 길림성의 관할규모는 2개 시, 2개 특별구, 1개 기(), 22개 현과 1개 공업특별구에 불과하였다. 1954년 동북행정구 조정을 실시해 기존의 흑룡강성(江省) 7개 현을 길림성에 귀속시키고 길림에 속했던 건안현(乾安)과 공동으로 백성특별구(白城专区)로 개편하였고, 기존 요동성(辽东) 1개 시와 9개 현을 길림성에 귀속시켜 통화특별구(通化专区)를 설립하였으며, 요동성의 요원시(源市), 서안현(西安), 동풍현()과 요서성(西省)의 사평시(四平市), 쌍료현(双辽县), 이수현(树县)을 길림성 관할하에 귀속시켰다. 같은 해 길림성 인민정부가 길림시에서 장춘으로 이주하였다. 1969년 내몽고자치구(蒙古自治)의 저리무맹(哲里木盟)과 훌룬베르맹(伦贝尔盟) 1개현 1개 기가 길림성에 귀속되었다가 1979년 다시 내몽고자치구에 귀환되었다. 그후부터 길림성 해정구역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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